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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격 명령과 군부의 이탈 === 1980년 10월 25일 전국의 무장 저항이 최고조에 이르자, 국가비상위원회 위원장 알렉산더 모로는 정권 수호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벨포르와 주요 도시에 대한 제한적 공군 폭격을 지시하였다. 이는 군 내 일부 참모들과 비밀리에 논의된 계획으로, '중추시설 파괴'를 명분으로 시민군이 점거한 벨포르 시청 광장, 롱비치 도심 전철 통제소, 크레테 방송 송신탑 등을 타격 대상으로 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명령은 공군 내부에서 즉시 거부당했다. 공군작전사령부 산하 제5항공여단장 베르나르 그레몽(Bernard Grémont) 소장은 "조국의 도시 위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일은 국민이 군복을 입힌 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명령 이행을 거절하고 항공기 출격 대기령을 무기한 연기하였다. 일부 참모진은 출격을 종용했지만, 조종사 다수가 "무장 시위대에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출격 거부 서명을 공동 제출했다. 몇 시간 뒤 [[미합중제국]]의 수도 직할 외교안보위원회는 루이나 주재 외교 채널을 통해 모로에게 직접 경고성 외교 각서를 보냈다. 각서는 "민간인에 대한 항공무기 사용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이며, 루이나 정부가 이를 감행할 경우 즉각적 외교 단절, 대루이나 제재,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고려할 것"이라고 명시하였다. 2년 전 군사반란을 방관했던 미합중제국도 동맹국의 수도가 자국 공군의 폭격을 받는 사태까지는 감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경고는 사실상 최후통첩에 가까웠고, 군 상층부에 극심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국방참모총장은 위원장과의 비공개 회담 직후 "군은 조국을 보호하지, 권력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문건을 남기고 사퇴하였다. 이날 오후 수도권 주요 부대 지휘관 상당수가 출동 명령을 거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2년 전 10.10 반란에 가담했던 장성들도 있었다. 위원장실 내부에서도 항명 움직임이 포착되었으며, 일부 경호 간부들은 모로의 거처를 외부와 격리하고 통신을 차단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모로의 폭격 명령은 이처럼 군 내부의 조직적 항명과 국제사회의 즉각적 경고로 좌절되었고, 이는 정권의 고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무렵부터 정권 붕괴는 시간 문제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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